인도는 세계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인구 급증은 인도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혔다. 식량난, 빈곤, 주거난,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인도 정부는 인구 조절을 국가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그중에서도 1970년대 중반 인디라 간디 정부가 추진한 ‘강제 불임화 캠페인’은 인도 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정책 중 하나이다.
당시 정부는 인구 억제를 명분으로 대규모 불임 수술을 추진했지만, 그 과정에서 강압과 인권 침해가 일어나 수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었다. 이 글에서는 인도의 강제 불임화 정책의 배경, 실행 과정, 그리고 사회적 후폭풍을 세 가지 소제목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인구 폭발과 인디라 간디의 위기
1960~70년대의 인도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독립 이후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농업 생산이 따라가지 못했고, 빈곤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당시 인도의 인구는 약 5억 명을 넘어섰으며, 매년 1천만 명 이상이 새롭게 태어났다. 정부는 이런 인구 폭증이 국가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디라 간디 총리는 1966년부터 여러 차례 가족계획 정책을 도입했다. 처음에는 피임 보급, 결혼 연령 상향, 산아 제한 캠페인 등 비교적 온건한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시골 지역의 전통적 가치관과 종교적 신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임이나 불임 수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975년, 인디라 간디 정부는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부정 선거 혐의로 총리직이 위태로워지자, 그녀는 ‘비상사태( 1975~1977)’를 선포하였다.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이 정지되고, 언론이 검열되며, 반대파 정치인들이 구금되는 등 사실상 독재 체제가 구축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인구 억제를 위한 강제 불임화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정부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희생’이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인디라 간디의 아들 산제이 간디가 주도적으로 이 정책을 추진하였다.
‘인구 조절’이라는 이름의 폭력
1976년부터 인도 전역에서 대대적인 불임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인구 조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할당제 방식을 도입하였다. 각 지역 행정관, 경찰, 의료기관은 일정 수의 불임 수술을 수행해야 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강제적으로 불임 수술을 받았다. 1976년 한 해에만 600만 명 이상이 수술을 받은 것으로 집계된다. 이는 이전 해보다 8배 이상 증가한 수치였다.
문제는 이러한 수술이 자발적 동의 없이, 비위생적 환경에서, 무리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피임을 거부하는 농민들에게 식량 배급, 정부 보조금, 주택 대출 등을 미끼로 불임 수술을 강요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경찰이 주민을 끌고 가 강제로 수술을 시키는 일도 있었다.
당시 의료 시설은 열악했고, 하루에도 수백 명을 수술하는 ‘불임 캠프’가 운영되었다. 위생 관리가 부실해 감염과 합병증이 속출했고, 일부는 수술 후 사망하기도 했다. 특히 농촌과 빈민층 남성들이 주요 대상이 되었다. 정부는 남성 정관 절제술을 우선적으로 권장했지만, 의사 부족으로 인해 여성의 난관 결찰술이 무리하게 시행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시기 인도의 도시 곳곳에는 “작은 가족, 행복한 나라(Small Family, Happy Nation)”라는 슬로건이 붙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국민들은 공포 속에서 불임 수술을 피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도망쳤고, 의료 시스템은 과부하 상태에 놓였다.
정치적 후폭풍과 인도 사회의 트라우마
이 강제 불임화 정책은 결국 인디라 간디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1977년 총선에서 인디라 간디는 역사적인 패배를 당했다. 국민들은 비상사태 시기 동안 자행된 인권 탄압과 불임화 캠페인에 대한 분노를 투표로 표출했다.
정권이 교체된 후, 새 정부는 비상사태 기간의 인권 침해를 조사했고, 불임화 캠페인의 실상을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불임 수술을 받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정확한 의료 정보 없이, 정부의 압력이나 협박에 의해 수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여파로 인도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가족계획’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았다. 정부가 다시 피임 캠페인을 시작하려 해도 국민들의 불신이 컸고, 일부 지역에서는 “가족계획 = 강제 수술”로 인식되었다.
이로 인해 인도의 인구 정책은 오랫동안 소극적인 방향으로 흘렀고,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인도의 강제 불임화는 인권 침해 사례로 비판받았다. 유엔과 국제 인권 단체들은 당시 인도 정부가 “개인의 생식권을 침해했다”고 규정했다. 이후 인도는 ‘자발적 가족계획’ 원칙을 확립하고, 강제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인구 억제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
인도의 1970년대 강제 불임화 캠페인은, 국가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당시 정부는 인구 억제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의 인권과 신뢰를 잃는 대가를 치렀다.
오늘날 인도는 세계 최대 인구 국가로 자리하고 있지만, 동시에 인권 중심의 인구정책으로 전환한 나라이기도 하다. 정부는 여성의 교육, 의료 접근성, 자발적 피임 선택을 통해 출산율을 완화하려는 방향으로 정책을 발전시켜왔다.
1970년대의 경험은 인도 사회에 깊은 교훈을 남겼다. 인구 문제는 단순히 숫자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 한 명 한 명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는 문제임을 보여준 것이다.
강제 불임화의 역사적 실패는 지금도 세계 각국의 인구 정책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국가의 발전은 개인의 존엄 위에 세워질 때만 지속될 수 있다. 인도는 그 혹독한 과거를 통해, 그 사실을 뼈아프게 배운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