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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수염세(1698): 수염 한 올에 담긴 근대화의 상징

by 달콤한슈가 2025. 11. 2.

17세기 말 러시아는 거대한 변혁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의 차르, 즉 황제 표트르 대제
유럽의 선진 문명을 러시아에 도입하기 위해
과감하고도 파격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강렬히 남은 정책이 있다.
바로 ‘수염세’, 즉 남성의 수염에 세금을 부과한 제도이다.

한 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수염’이 왜 세금의 대상이 되었을까?
이 정책은 단순한 외모 규제가 아니라,
러시아 사회가 중세적 전통에서 근대적 유럽으로 나아가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러시아의 수염세;콧수염을 기른 한 군인
러시아의 수염세;콧수염을 기른 한 군인

표트르 대제, 유럽을 보고 충격을 받다

17세기 후반 러시아는 여전히 봉건적 질서가 강한 나라였다.
귀족과 성직자, 상인 모두가 긴 수염을 자랑스럽게 기르고 있었으며,
수염은 남성의 권위와 신앙심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하느님이 인간을 수염 있는 모습으로 창조했다”는 이유로,
수염을 깎는 행위를 신성 모독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 차르 표트르 1세는 서유럽의 현실을 보고
러시아의 낙후성을 절감했다.
1697년부터 1698년까지 그는 ‘대사절단’이라 불리는
유럽 순방 여행을 떠나, 네덜란드·영국·프러시아 등 여러 나라를 직접 시찰했다.

그는 조선소에서 직접 목수로 일하며
유럽의 해군 기술과 과학 문화를 배웠고,
유럽 도시의 깔끔한 복장과 단정한 외모,
그리고 면도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인상을 눈여겨봤다.

유럽 귀족들이 깔끔히 면도한 얼굴로
당당히 토론하고 일하는 모습을 본 표트르는
“러시아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가 돌아온 뒤 가장 먼저 단행한 개혁이 바로 ‘수염 개혁’이었다.

수염을 깎지 않으면 세금을 내라

1698년, 표트르 대제는 귀국하자마자
궁정 신하들을 불러모았다.
그는 직접 칼을 들어 신하들의 수염을 잘라버리며 선언했다.
“이제부터 러시아 남자는 수염을 깎아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 사회의 전통은 너무 강했다.
귀족과 상인, 성직자들은 황제의 명령에도 반발했다.
표트르는 현실적인 타협책으로 ‘수염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즉, 수염을 완전히 금지하지는 않되,
수염을 유지하려면 세금을 내야 했다.
이는 “근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그 대가를 치러라”는 의미였다.

세금의 금액은 신분에 따라 달랐다.

귀족과 군인: 연간 약 100루블

상인 계층: 60루블

하급 관리나 장인: 30루블

농민과 하층민: 도시 입장 시 1코페이카

(당시 1루블은 상당히 큰 돈이었다. 일반 농민의 연 수입이 몇 루블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세금을 낸 사람에게는 ‘수염 증명 메달’이 발급되었다.
메달 앞면에는 독수리 문장이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수염은 쓸모없는 짐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즉, 수염을 유지하되, 세금을 내야 하고
그 세금 납부 증표를 항상 소지해야 했던 것이다.

거리나 시장에서 수염을 깎지 않은 남자가
이 증표를 제시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강제로 면도를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염세는 단순한 세금 정책이 아니라,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사회의 문화를 강제로 서유럽식으로 개혁하려는 상징적 조치였다.

근대화를 향한 고통스러운 전환

표트르 대제의 수염세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수염을 자르면 지옥에 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정책을 ‘신의 뜻에 대한 도전’이라 여겼다.

많은 사람들이 몰래 수염을 기르고,
세금 납부를 피하기 위해 교외나 시골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도시 상류층을 중심으로
면도한 얼굴이 ‘문명인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표트르 대제는 단지 외모를 바꾸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러시아의 정신과 사고방식 자체를 근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수염세와 함께
서유럽식 복장 착용, 연회 문화, 서양식 학문 교육을 장려했다.

또한 해군과 산업 발전을 위해
서양 기술자들을 러시아로 초빙하고,
행정 체계와 군사 제도까지 유럽식으로 개편했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에는 바로 ‘수염 개혁’이 있었다.

이처럼 표트르 대제의 정책은 단순히 미용의 문제가 아니라,
러시아 사회 전체를 뒤흔든 문화적 대전환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은 동시에 강압적 성격을 띠기도 했다.
전통을 중시하던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억압당하고 있다는 불만을 품었고,
그 여파는 표트르 사후에도 오랫동안 남았다.

수염세는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다가
18세기 중반 이후 점차 완화되었으며,
19세기 초에는 사실상 폐지되었다.
하지만 그 흔적은 러시아 문화와 예술 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러시아의 초상화나 문학 작품에는
‘서양식으로 깎은 얼굴’과 ‘수염을 고집한 전통인’의 대립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은 단순히 외모의 차이가 아니라,
정체성과 근대화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는 코드였다.

수염 한 올에 담긴 러시아의 근대화

러시아의 수염세는 세계 역사상 가장 독특한 세금 중 하나로 꼽힌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외모를 규제하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표트르 대제의 근대화 의지와 국가 개혁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수염세는 억압적이었지만,
결국 러시아를 유럽형 근대 국가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표트르 대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워
“러시아의 창을 유럽으로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수염은 러시아 남성에게 자부심이었고,
그것을 깎는다는 것은 전통을 버린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표트르 대제는 그 상징을 과감히 바꾸어
‘새로운 러시아’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오늘날에도 러시아의 수염세는
“정책이 단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문화를 바꾸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역사적 교훈을 남긴다.

수염 한 올에 부과된 세금은 결국
한 나라가 중세의 어둠을 벗고
근대의 빛으로 나아간 상징이었다.